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32>전교협 교원노조 건설 결의

1989년 2월 19일 전교협 정기대의원대회(서울 단국대 학생극장)는 참석대의원 280명(총원 369명)의 만장일치로 ‘상반기 중 교(직)원노조 건설’을 의결했다. 앞서 1월 20일 전교협 제5차 중앙위원회는 참석자 29명 중 28명의 찬성(1명 기권)으로 ‘상반기 중 대중적 합의를 기반으로 교원노조 결성’을 결의한 바에 따라 15개 시·도 교협은 대의원회의 또는 임시총회 등을 통해 5차 중앙위의 결의를 받아 들였다.







서울교협은 2월 12일 대의원회의에서 격론 끝에 1표 차이로 찬성의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 서울 활동가들 내부에는 교원노조 건설 경로에 관하여 상당한 견해차가 존재했다. 이 차이는 88년 7월 25일~27일 전교협 제2차 임원연수(부천 작은자리)에서 전교협의 조직적 전망을 둘러싼 일대 논쟁(이른바 ‘교원노조-자교단 논쟁’)으로 드러났다. 자주적 교원단체 건설(이하 ‘자교단’)을 주장한 사람들은 전교협을 자교단 건설의 매개 조직으로 보았다. 이들은 자교단의 완성체로 전교협과 같은 ‘협의회’의 수준을 넘어 구성원의 책임성과 대표성이 담보되는 강고한 조직 형태로 <전국교육자협회> 또는 <전국교육자회>를 제시했다. 그러나 교원노조 건설론자들은 전교협이 곧 자교단이다, 하지만 법적 임의단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노동3권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교원노조를 지향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전교협 교육연구국(국장 고재호)과 홍보출판국(국장 노웅희)은 이 연수를 겨냥하여『교사와 교원단체』(전교협 총서 제3권)을 불과 몇 일만에 발행하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런 논쟁은 8월 13일 전교협 제1차 임시대대에서 ‘교원노조 결성을 장기적 조직 전망으로 하며 교사의 노동3권 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교육악법 개폐 투쟁을 강화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88년 하반기 투쟁이 마무리되고 전교협 제3차 임원수련회가 12월 27일~29일 경남 거창고에서 열린다. 시·도 교협 부장, 시군구 교협 사무국장 등 참석자 300여 명은 88년 여소야대의 정치지형에 기대어 설정한 ‘법제화 후 노조건설’ 노선을 폐기하고 법 개정에 상관하지 않고 ‘선 노조건설 후 합법화 쟁취’를 결의한다. 이른바 ‘악법은 어겨서 깨뜨린다’는 고육지책을 선택한 것이다. 마침 거창고 강당 벽에는 설립자 전영창 선생이 지은 <직업선택의 십계>라는 글이 걸려 있어 하나부터 열까지 열정으로 밤을 지새운 젊은 교사들의 마음에 묘한 울림을 일으켰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



전교협 회장단(윤영규, 이규삼, 오종렬, 이부영)은 각 지역별 겨울연수의 결의를 바탕으로 2월 2일 신년기자회견에서 2월 임시국회에서 교육악법의 민주적 개정을 촉구하고 법 개정 여부에 관계없이 상반기 교원노조 건설 추진을 천명하여 정치권과 정부를 압박했다. 광주교협은 아예 전국 최초로 교원노조건설추진위(위원장 오종렬 현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를 구성했다.



교사들의 교원노조 건설 추진 소식을 접한 이목 선생(4·19혁명기 한국교원노조연합 사무국장)은 군사독재정권이 빼앗아 간 교원노조의 맥을 이으려는 후배 교사들에게 충고했다. “무엇보다 교사라는 직업에 충실해야 한다. 학생에 대한 열성, 민족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는 안된다. 학생의 사랑과 학부모의 신뢰를 얻어야 운동이 산다. 교사가 자기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운동해서는 안된다. 노동자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교육노동의 특수성을 인식해야 한다.”



나중에 문익환 목사가 ‘전교조의 해’로 이름 붙인 1989년 3월 새 학년이 이렇게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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