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사설]불법 찬조금 근절은 학교혁신의 출발

해마다 3월 말, 4월 초가 되면 불법 찬조금 문제로 뒷말이 무성하다. 연중행사처럼 밝혀지는 몇 가지 사례만으로도 교사와 학교에 대한 불신의 벽은 높아만 간다. 최근 서울의 한 고교에서는 불법 찬조금으로 3학년 담임교사들이 방학 중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언론보도가 있어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허탈감을 안겨 주었다. 그간 전교조의 오랜 노력과 교사, 학부모의 의식 변화로 찬조금이나 촌지 수수가 줄었지만, 이같이 불거지는 부끄러운 행태는 일순간에 불타버린 숭례문같이 교직사회에 대한 신뢰를 한 방에 날려버린다.

학부모회는 학교 운영에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여 반영시키는 창구로 기능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다. 그런데 대개 학부모회는 본연의 기능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치마바람의 선봉대 역할을 자임하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회 구성을 명목으로 학급당 대의원수를 할당하고 그 중에서 선임된 학부모회장이 학부모로부터 적게는 십만원, 많게는 수십만원 씩 송금받아 대도시 일부 학교는 수천만원대의 불법 찬조금을 조성했다고 한다. 일부 특목고에서는 학기 초에 전체 학부모들에게 일괄로 수십만원씩 걷어 연간 활동비로 사용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음성 탈법적인 돈으로 환경미화비용이나 학생 간식비로 사용하고, 소풍과 백일장, 체육대회, 수련회, 직원연수 등 학교의 각종 행사 때 회식비나 자율학습 지도비, 담임수고비 등으로 지출해왔다. 학부모회와 학교의 은밀한 묵계 속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 온 것이다.

주변의 교사들은 얼떨결에 불법 찬조금의 공범이 된 불편한 경험들을 종종 밝히며 씁쓸해 한다. 담임들 회식하러 갔는데 사전에 알지 못한 채 학부모들이 앉아 있어서 당황했던 일, 학교예산에 책정된 담임협의회비로 식사를 하고 돈이 모자랐는데 잔액이 불법 찬조금으로 지급된 것을 나중에 알게 된 일, 학년부장을 통해 건네진 돈을 거절하자는 의견과 학부모 성의니까 이 정도는 수용하자는 의견이 대립해 불협화음이 생긴 일, 불법 찬조금이 사용되는 회식자리 참석자와 불참자의 갈등, 스승의 날이나 명절 때 불법 찬조금으로 구입해서 돌린 상품권을 둘러싼 어색한 장면 등 많은 사례가 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상황에서 동료교사 관계나 학부모 입장을 고려하느라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자의반 타의반 동참하면 문제제기의 예봉이 꺾이게 되고, 불편한 마음속에 지내다가 이후로도 계속 참여하여 익숙해지거나 자기합리화로 넘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때론 찬조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착복하여 배달사고(?)가 나거나 학부모 간의 갈등도 나타난다. 하지만 내부자 고발 형태로 민원이 제기되기 전에는 공생관계에 있는 불법 찬조금의 특성상 외부로 잘 노출되지 않는다. 문제의식을 가진 학부모가 찬조금을 거부하거나 고발하고 싶어도 아이 걱정때문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일선학교에서 이런 일을 차단해야 할 학교관리자들은 내막을 알면서도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한 일이라 모른다고 발뺌하는 경우가 있다. 교육청에 찬조금을 제보하였다가 교육청이 학부모의 신상을 학교에 알려 난처한 입장에 빠졌던 경우도 많다. 교육당국은 제보하는 학부모의 신원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제보된 사실에 주목하여 조사, 감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용처를 분명히 한 공식적 학교발전기금 외에 어떠한 돈도 걷지 않도록 법에서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 찬조금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교장과 감독청의 의지 부족, 학부모의 빗나간 의식, 일부 교사의 금품향응수수 관행에서 기인한다. 아울러 명백하게 학교예산으로 책정하여 집행할 항목들을 불법 찬조금에 의존해 온 학교관행, 감독관청의 어설픈 관리 감독에도 책임이 있다.

불법 찬조금은 개별 촌지보다 더욱 질이 나쁜 구조적 집단촌지이다. 찬조금이나 촌지를 내는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이곳 저곳에서 자랑겸 불평겸 볼멘 소리를 하며 학교와 교사들을 비난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 특히 눈치빠른 학생들의 안테나를 피할 길이 없다. 아이들이 선생님과 학교를 어떻게 생각할까. 불신과 경멸의 모래밭에서 참교육의 열매가 제대로 자라날 수 있을까?

삼성 '떡값'을 둘러싼 공방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요즘, 교직사회도 깊은 자성이 필요하다. 그들보다 액수가 적다고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는다. 단언컨대 불법 찬조금과 촌지는 받지 않으면 사라진다. 교사들의 자정노력과 함께 교육당국의 예방 근절대책을 촉구한다. 학부모들에게도 당부한다. 여건되시면 글로벌시대에 걸맞게 전쟁난민이나 기아어린이 구호기금을 내주시라. 검은 유혹으로 선생님들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말고 자존심과 명예를 지켜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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