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희망칼럼]'모난돌'의 외로움

군대에서 제대하고 복학하고선 혼자 도시락 먹는 것을 즐겨했다.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도시락 펴 놓고선, 신문 한 면 보고, 한 숟갈 뜨고, 그렇게 느릿느릿 밥을 먹는 것은 실은 군대 시절 내내 꿈꾸었던 일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복학한 남자 동기들 몇 녀석이 와서는 "청승 좀 그만 떨라"며 나를 구내식당으로 데려 가는 것이었다. 졸지에 나는 벚나무 벤치 아래 천상의 식사를 즐기는 '단독자'에서 설거지 소리가 우당탕탕하는 지하(구내식당은 왜 항상 지하에만 있을까)의 '무리들' 속으로 던져졌다.



임용고사를 준비할 무렵, 교과서건 교육과정해설서건 뭐든 일단 '들입다' 외워놓고 봐야 하는 식의 공부를 따라갈 수 없었다. 내 식대로 읽고 정리해보리라 작정하고 노량진 학원이나 스터디 팀에 끼지 않고 몇 달을 버텨보았다. 그러나, 도저히 불안감을 견딜 수 없어 노량진의 유명짜한 전공 국어 강사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초대형 강의실은 임용 정원보다 많아 보이는 수강생으로 꽉 차 있었다. 맨 뒤에 앉아 있으니 강사의 얼굴마저 희미해서 자라처럼 목을 뽑아 머리 위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강의를 들었다. 이게 대체 뭔가 싶은 마음이 들었고, 결국 수강을 취소하고 동굴처럼 컴컴한 하숙방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물론 그해 임용시험에 보기 좋게 낙방했다. 이런 공부를 다시 시작하자니 막막했고, 수십대 일의 경쟁을 뚫을 자신도 없었다. 10년 넘게 키워온 꿈인데 이렇게 접어야 하나 싶어 비감했다. 다행히 천운이 따라줘서 사립 공채에 붙었고, 교단에 설 수 있었다.



교직 경력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내가 맡은 반은 항상 시끄럽고, 자유분방하고, 수업하기 힘들다는 소리를 듣는다. 아이들을 통제하고 '장악'(이런 표현이 교육학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는데 서투르다는 평판은 서서히 교사로서의 내 열등감이 되었다. 모둠별로 한솥비빔밥 먹기 행사라도 할라치면 다른 반 아이들이 우리 반 복도 창문에 새카맣게 달라붙는다. 그리고선 제 담임에게 가서 '우리 반은 왜 저거 안 해요?' 한다(고등학생이나 된 녀석들이 눈치도 없이). 두발, 복장 검사, 이런 일들 앞에서 나는 늘 어정쩡하게, 애매하게, 버텨야 한다. 아이들은 학교를 감옥이라 한다. 감옥의 간수는 직분에 충실하고 깐깐한 간수와 인간적이고 허술한 간수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감옥을 운영하는 '배역'의 차이일지도 모르는데, 비교적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제 모양새에 위안을 느끼는 것은 서글픈 일이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서 나도 조금씩 '둥글어져' 왔다.



이 체제가 강요하는 유일한 계명은 "대세(大勢)를 따르라."는 것이다. 모난 돌은 반드시 정을 맞게 돼 있다. 남들 다 하는 일 혼자서 하지 않고 있으면 엄습하는 불안감을, 남들 다 안 하는 일 혼자서 할 때의 외로움을 견뎌낼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하여 이 체제는 안정적이고 고요하지만, 정신적으로 완전히 공허한 공간이 되었다. 침묵과 타율, 눈치와 '그럭저럭'은 이 체제의 행동 준거가 되었다. 그러나 과연 아무 일 없는 것일까. 지금도 힘없고 약한 이들에게 가해지는 유형 무형의 폭력은 끝없이 대물림 되고 있다.



작년 겨울 어느 날, 한 아이가 교무실에서 제 머리 모양을 문제 삼는 선생님 앞에서 몇 시간을 침묵으로 버티는 모습을 보았다. 차라리 굴복하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싶었는데, 녀석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어 시간 내내 아슬아슬하던 어느 순간 문득 '저 녀석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객기를 부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고, 그래서 모두를 불편하게 했지만, 대충 타협하고 그럭저럭 묻어가지는 않으려 했다. 녀석은 대세의 완력에 주눅 들고, 침묵과 타율에 조금씩 젖어드는 나보다는 차라리 '자유'에 훨씬 가까운,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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