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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고쳐 주세요.”,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들어요.” “코가 너무 못 생겼어요.” 더 나아가 “키가 너무 작아요.”까지 있었다. 아이들의 위트라고 생각하고 한번 마음 속으로 씨익 웃고 넘어간다.
의외로 이런 비슷한 내용들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온다.
“왜 수업 시간에 열심히 안 듣는 애들을 때리지 않아요?” “떠드는 학생들을 벌을 주거나 때려 주세요.”
나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때리지 않는다. 학생들 전체에게 꼬박꼬박 존대말을 쓴다. 물론 개별 학생 한 명에게는 말을 낮추어서 한다. 이게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 스스로 학생들을 존중하자는 자기다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존대말을 쓰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학생들을 때리지 않는 것도 여전히 이상하게 생각한다.
“수업 시간에 떠드는 것도 나쁜 거지만 사람을 때리는 것은 더 나쁜 거 아닌가? 수업 시간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을 체벌로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외적 압력에 의해서 고쳐지는 행동은 그 외적 압력이 없어지는 순간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을까?”
“맞을 짓을 하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다. 더 나아가서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때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학생에게는 머리보다 공부가 훨씬 중요하고, 머리는 인권에 속하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흔히 말하는 인권 의식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인권 감수성이 거의 ‘0’에 가깝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는 체벌과 두발 제한에 목숨을 거는 친구들이 있다. 폭력이고 인권 침해이라는 것이다. 완전히 양극화된 이런 의식 사이에서 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갈등이 언제나 존재한다.
왜 그럴까? 어른들의 탓이다. 그렇게 살지 않았고 그렇게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고, 학벌과 출세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살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머리모양을 목숨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를 존중하는 것이 진짜 인권의식이다.
인류의 역사 발전은 인권이 아닌 것이 인권이 되고, 낮은 인권의식이 높은 인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올해도 아이들 때리지 않고 높임말 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할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