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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화와 획일성은 관료쥬의의 가장 두드러진 상징이다.(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안옥수 기자 |
‘전체 학급이 일제히 시간 맞춰 청소하는데 왜 이 반만 종례하나?’
교감이 우리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한 말이다. 자치종례 중이었는데, 우리반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드러내준 폭거였다. 그 사건 이후 우리반 학급회의 주제는 ‘교감샘의 간섭에 어떻게 대응할까?’였다. 우리반 애들은 너무나도 창의적으로 해결했다. 종례를 하지 않고 다른 반이 일제 청소할 때 집에 가버리는 것으로… ….
관료주의만이 아니다. 직원회의시간에 “체벌금지가 우리학교 생활지도 원칙”이라고 발표하고 나서, 나는 모든 교사로부터 원망을 들었다. 바로 관례 때문이었다. ‘예년에 어떻게 했는가’는 항상 강력한 힘을 갖는다. 나는 규정을 정확하게 안내했을 따름인데도 ‘편하게 애들 때리는 관례’가 나를 부끄럽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교장, 교감, 교사들은 어떤 때는 법과 규정, 어떤 때는 관례를 들먹이기도 한다. 그 둘은 때로 충돌하기도 하지만, 그를 써먹는 기준은 얼마나 편한가였다. 법과 규정, 절차, 관례는 항상 교장, 교감, 행정실, 혹은 교사들 편이었으며 학생들에게 유리한 적은 없다.
이런 관료주의를 넘어서려면 자유로운 인간들의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당연한 것도 다시 곱씹어 봐야 한다.
예전에 전교조 교사들이 그 역할을 했다. ‘벌떡 교사’는 그 과정에서 얻은 명예로운 이름이었다. 그러나 전교조는 교사들이 교장, 교감 눈치 덜 보고 편하게 생활하도록 만들고는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전교조도 관료화되기 시작했다.
학교현장을 지배하는 이 막강한 힘 관료주의와 관례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모르겠다.
그러나 모른다는 데에 오히려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모른다고 제쳐두면 가능성이 없지만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노력하면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나부터 공부해야 한다. 동료와 토론해야 한다. 학생들과 학부모의 말을 들어야 한다. 거기에 가능성이 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시민체육대회에 학생을 동원한다고 하길래 부장회의에서 “교장선생님,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물건하고 노예밖에 없습니다. 저는 학생부장으로서 직책을 걸고 동원 못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분위기가 싸늘해져서 동원을 안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려다가 부장 중에 몇이 그렇게 하면 일이 안 된다고 해서 다시 동원이 아니라 ‘참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참여’는 무산되어 버렸다. 교사들은 교장에게 협조한다고 생각했고 교장은 민주적으로 진행했으니까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섭섭해져 버렸다. 서로 속마음을 다 드러내지 않고 ‘협조’와 ‘민주’로 포장했기 때문이다.
관료주의는 허위와 가식을 벗고 진심을 드러낼 때 봄눈 녹듯 스러질 것이다. 전교조의 관료주의도, 서로의 본 마음이 만나 부비면서 내는 온기에 사그러지기를 바란다.



서열화와 획일성은 관료쥬의의 가장 두드러진 상징이다.(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안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