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하늘은 높고 파랬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면 좋겠지만 교사는 국회 앞을 찾았다. ‘차등성과급 폐지’, ‘교원평가 반대’ 등이 적힌 피켓과 자그마한 손 현수막을 들고서다.
13일 오후 2시30분 경 서울 여의도 국회가 바로 보이는 한국산업은행 앞. 전교조(위원장 정진화)가 연 전국교사결의대회에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 교사가 1000여명이다.
구신서 전교조 전남지부 지부장과 230여명의 전남지부 조합원 교사가 함께 구호를 외치며 대회의 의미를 알렸다.
‘농산어촌교육특별법 제정’
‘차등성과급 폐지’
‘교원평가 저지’
‘표준수업시수 쟁취’
이 자리에는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의장과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 전교조 지도자문위원인 이수호 전 위원장, 장혜옥 전 위원장도 함께 해 전교조의 요구에 힘을 실었다.
대회사를 할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이 맨 먼저 무대에 올랐다. 정진화 위원장은 “지난 10월을 돌아보면 2월부터 끊임없이 시도하는 교원평가 법제화를 막아내고 차등성과급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는 힘을 조합원이 아래로부터 함께 만들어왔다”면서 “최근 이명박 후보가 내 논 공약으로 교육이 어디로 가야 할 지 고민하게 되고 우리는 꾸준히 준비해 왔다. 교육인적자원이 아니고 교육복지 실현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지난 9일 현재 고등학교 등록금 3~6배에 달하는 자율형 사립고를 100개 더 짓고 학생부와 수학능력시험의 반영을 자율화하고 이어 수능 과목을 줄인 뒤 대학이 완전히 자율로 정하는 3단계 대학입시안을 교육공약으로 내 놔 부자를 위하고 교육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교육정책이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정 위원장은 이어 “올 11월에는 새로운 근무평정이 시행되는데 무슨 기준으로 등급이 매겨지는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으며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싶다면 표준수업시수를 정해 연구할 시간을 달라”고 주장했다.
“내년 2월~5년 기획예산처 해체 투쟁”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획예산처 해체 투쟁’을 제안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차등성과급과 교육예산 등을 틀어쥐고 있는 내년 2월부터 5월까지 전교조를 비롯한 공공부문노조와 함께 기획예산처 해체 투쟁을 벌이자”고 목소리를 높이며 “이를 토대로 내년 7월과 8월에 노동자를 외면하는 정부에 맞설 것이다. 끈질기면서도 힘 있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위원장은 “그 시작은 오는 11월11일 전국노동자대회와 범국민행동의 날이 될 것”이라며 “전교조는 8만 조합원 가운데 5만은 참석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전교조 조합원의 많은 참여를 당부했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는 “오늘의 주된 요구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가슴으로 절절히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반복하진 않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발언 내용은 역시 ‘대선’이었다.
문성현 대표는 “민주노동당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잘라말하며 “한미FTA저지,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의 시대적 과제를 안고 이명박 후보가 되는 것을 막는데 최선을 다하고 만약에 되더라도 그냥 자연스럽게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대선은 지난 10년 민주세력이 이뤄놓은 세월을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으로 바뀌는 것은 역사적 대반전”이라며 “이미 경험한 보수정당과 정치를 끝내고 이제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조금씩 바꿔가야 한다. 여러분과 함께 승리하겠다”며 주먹 쥔 손을 올렸다.
“일주일에 수업 1시간해도, 40시간해도 아무 문제없어”
박동국 전교조 서울지부 초등북부지회장은 12년 동안이나 ‘표준수업시수 법제화’ 약속을 어긴 교육부를 비판했다.
2002년에 맺은 단체협약에서 표준수업시수를 법으로 정한다는 내용, 2005년 교육부가 직접 발표한 오는 2014년까지 초-중-고 각각 20-18-16시간으로 줄이는 방안을 달성하기 위해 2006년 법제화 등 무려 7번이나 약속했지만 지금껏 지키지 않았다.
박동국 지회장은 “일주일에 1시간을 수업해도 되고 40시간을 수업해도 된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이러니 학기 초마다 수업시수를 놓고 선생님들끼리 얼굴을 붉히고 수업시수 격차가 심다”며 “약속을 밥 먹듯이 깨는 교육부를 어떻게 믿냐. 교사 속이 터질 지경이다.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한다. 공교육을 살리고 아이들을 살리는 수업 거부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정종완 전교조 전남지부 광양중등지회장은 직접 쓴 편지를 읽으며 차등성과급에 대한 울분을 토했다.
교육부는 오는 15일 성과급제도개선위원회를 연 뒤 곧바로 성과급을 지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주체에서 교육시장의 노예로 전락할까
“차등성과급을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는 ‘교육주체’에서 ‘교육시장의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차등성과급-교원평가-교원자격갱신제’를 나란히 세워놓고 보면 제 이야기가 결코 과장이나 협박이 아니라 절박한 현실임을 느끼실 것입니다. 이 셋을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교육의 시장화입니다. 첫 단계인 차등성과급을 이 시점에서 막아내지 못하면 마치 둑이 터지듯이 신자유주의의 경쟁과 효율의 논리는 교육현장을 덮치고 말 것입니다.
저들은(적들이라는 표현은 삼가겠습니다.) 돈 앞에 망설이는 우리들의 약한 마음까지도 이미 다 계산하여 이런 일을 획책하고 흔들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렇지, 너희들이 돈 앞에 별 수 있어’ 하며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우리를 비웃을 그들을 생각하면 화가 나 미치겠습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속이 상해 죽겠습니다. 혹시라도 반납투쟁이 미진하여 반납액이 미미하면 또 ‘그럴 줄 알았다’며 조롱할 그들을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아깝다고 망설이는 순간, 달콤한 유혹에 흔들리는 순간, 우리는 악마에게 영혼을 파고 자존심을 읽고 주인에서 노예로 전락하여 저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정종완 지회장은 “등급화 거부선언, 차등지급액 전액 반납 결의, 균등배분의 의지를 모으자”며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로 성과급 차등분 전액반납투쟁에 함께 하자”고 강조했다.
1000여명의 참가자들은 반드시 차등성과급을 폐지하고 교원평가 법제화를 저지하자고 결의하며 그 글귀가 쓰인 현수막을 불살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