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막 자라고 있는 새싹을 자르지 마세요”

인문계 직업학교 서울아현산업정보학교 난데없는 폐교 위기

인문계고 3학년생을 대상으로 직업교육을 하고 있는 아현산업정보학교 교육부, 교육청 연구학교였음에도 학교가 갑자기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 5일/옥수 기자

낡은 학교 건물에 들어가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학교 복도와 벽에 싱싱한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식물원을 연상케 하는 교실에 들어서니 학생들이 숯과 식물을 이용해 숯부작을 만들고 있다. 제과제빵과에선 초콜릿 케익을 만들었단다. 한양식 조리과 조리대 앞에서 덩치 큰 고3 남학생들이 열심히 감자 스프를 만들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아현동 굴레방다리 옆에 있는 아현산업정보학교 오후 4시 풍경이다.



“우리 학교 조경은 모두 학생들이 합니다. 우리 학교는 전부 학생들에 의해서 돌아가요. 빵을 만들면 지역 양로원에 가져다 주기도 한답니다.” 디자인 모델링과 이규한 교사의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 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했다.



이 학교는 1954년 개교 이래 인문계고 3학년생을 대상으로 직업교육을 하고 있는 학교다. 한양식 조리과, 실용음악과, 애니메이션과, 제과제빵과, 화훼조경과 등 14개과가 운영되는 이 학교는 올해 입학 경쟁률만도 평균 3:1을 넘었다. 올해 입학한 학생은 810명. 학생들은 월요일만 자신이 다니던 인문계고에 가고 나머지 요일은 이곳에서 직업교육을 받는다. 이와 같은 학교는 서울에 3개, 전국에는 6개가 있다.



아현산업학교 구성원들은 전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학교라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실제로 이 학교는 2005년과 2006년도 교육부 시범학교였으며, 올해는 교육청 연구학교로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지난 8월 21일 개학과 동시에 느닷없는 폐교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실용음악과 영상과 등 인기있는 과를 더 특성화시켜 학급수를 늘리고 더 많은 고3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발전모델을 그리던 학교 구성원들의 꿈이 근 4개월만에 ‘동호공고 폐지, 아현산업학교 폐지, 방송문화고 신설’이라는 행정예고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다” 이것이 학교구성원들의 하나같은 심정이라고 이규한 교사는 말한다.



2010년 신설이 예고된 방송문화고는 중3 학생들을 뽑는 특성화고이다. 인문계고 부적응 학생들이 3학년이 되어 자신의 적성을 찾아 직업교육을 받는 아현산업학교의 성격과 완전히 다르다. 원래는 별개의 사안이었으나 서울시교육청(교육감 공정택)의 계획성 없는 행정으로 인해 동호공고 사안과 합쳐지면서 반세기 넘도록 서울지역 인문계고 학생들에게 직업교육을 해왔던 학교가 갑자기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난해까지 교육부 시범학교였던 학교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는데도 교육부 과학산업교육정책과 관계자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각 시도교육청으로 이양되다 보니 폐교와 관련해서는 이미 결과가 나온 다음에 보고가 되는 체계여서 간섭할 수도 없다”고 하면서도 “관련자료를 요청한 후 충분한 의견조율을 했는지 등을 파악하고 서울시교육청과 협의를 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직업교육활성화 차원에서 폐교는 성급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입장 밝히기를 꺼렸다.



“이런 직업학교는 더 늘려야 합니다. 우리 학교가 수용하지 못하는 2천 여명의 인문계고 학생이 다닐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학교 교사들의 말이다. “인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업시간에 잠만 자던 학생이 직업학교에서 자기의 적성을 찾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면 기쁘다”라고 인문계고 어느 교사는 말한다.



“공부에 취미가 없었던 저는 이 학교에 와서 꿈과 희망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학교가 없어지면 제 꿈과 희망도 사라집니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워줘야 할 어른들이 학교를 없앤다면 자라나는 새싹들이 다시 죽어버릴 겁니다.” 요리사가 꿈인 한 학생의 말이다.



폐교가 결정되면 이 학교는 올해 바로 건물이 헐린다. 교육을 받아오던 810명의 학생들은 학원이나 다른 직업교육기관으로 가야 한다.



“저희와 같은 아이들이 많아요. 후배들도 이 곳에서 자기 적성에 맞는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폐교가 아니라 더 많이 늘려주세요” 재학생들의 하나같은 당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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