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별기회] “군대에 가는 것도 가지 않는 것도 거대한 모험입니다”

병역거부자 유정민석의 ‘이반(異般)병의 편지’

어느 봄날의 문턱에서 동성애자임을 밝히며 병역거부 선언을 한 유정민석이라고 합니다. 이제 ‘동성애자’라는 명명과 더불어 ‘병역거부자’라는 레테르가 붙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다른 사유로 병역 거부를 하셨던 분들 역시도 마찬가지겠지만 ‘동성애자’라는 사회적 소수자로서 더욱 도드라지고 지난한 앞날을 준비하고 있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병역거부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동성애자인 저로서는 군대를 가는 것도, 또한 군대를 가지 않는 것도 극도의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형용모순처럼 들리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흡사 ‘프로크러스테스의 침대’ 같은 철저한 성별 분업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이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구심력을 작용하고 있으며 동성애자들의 인권이 극도로 취약한 것이 현실이기에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군 생활을 하는 것도, 또한 군대라는 곳이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는 통과의례이며 군필자가 진정한 표준형의 남자로 간주되는 대한민국 땅에서는 아이러니 하게도 군대를 가지 않는 것도 역시 양쪽 모두 거대한 모험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게이라는 제 소수자적 정체성을 갖고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군대라는 곳에 대해서 조금은 다를 수 있는 감수성으로 조심스럽게나마 이야기하려 합니다.


소수자적 정체성으로 바라본 군대


최근 영화 ‘왕의 남자’나 ‘브로크 백 마운틴’ 등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이나 하리수씨의 방송 활동 등을 통해서 이제 동성애자들은 예전과 달리 조금 더 친근하고 양지로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적어도 예전과 같이 무거운 사회적 의제로 다가오거나 더 이상 TV 토론회 등에서 찬반의 대상이며 사회 부적응자 내지는 반사회적 존재들로 치부되거나 매도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정상적인 성애로 간주되고 배려 받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군대 내 동성애자들의 인권 침해 사건 사례 등이 이를 반증해 줍니다.


군대라는 곳은 성별 이데올로기를 재생산 하며 철저하게 ‘성별 고착화’ 되어있는 기관이라 생각합니다. 남성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고, 군사 쿠테타와 각종 남성우월주의, 군사주의적인 악습, 구습 잔재들이 잔존한 것이 남(男)한 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여고생이 헌법소원을 제기 했던 것이 남성권익단체의 사주를 받은 것이란 사실과 군가산점 제도가 위헌판결을 받았다는 것이 이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만큼 숭고하고 근엄한 남신(男神)의 아바타 같은 군대라는 리바이어던은 그 저변에 ‘남성성’이라는 기제를 필요조건으로 하는 기반위에 존립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군대 내의 남성적인 병영문화는 그토록 동성애자 혐오, 여성 혐오들로 인하여 왜곡되고 얼룩진 병폐들로 만연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실례로 흔히들 남성들은 군 입대를 하기 전에 ‘진짜 남자가 되어서 돌아오겠다.’라는 소견을 말하고는 합니다. 군 입대를 하기 전에는 여성이었음을 심경고백 하는 것이라고 저는 풍자하곤 하지만 ‘남성성은 곧 정상성’인 통념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아무도 이런 말을 듣고는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진짜 남자가 되어 돌아오겠다는 가짜 커밍아웃


작금의 군 당국에서는 동성애자들의 입대를 정신병과로 분류하여 제한하고 ‘변태적 성벽자’라는 규정을 내려 군인으로서의 품위를 어겼다고 하며 합의된 동성애자들 까지도 ‘계간’이라는 닭의 성교에 빗댄 동성애자들에게 비하적인 용어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성애자들을 성범죄 가해자나 동성애적 정체성을 확산, 유입시키는 잠재적 성범죄자로 취급을 하곤 합니다. 허나 수많은 논문이나 실태 조사에서 판명되었듯이 동성애자들은 차별과 두려움으로 인해 가해자적 위치에 서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대개의 동성애자들은 군 입대를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면서 입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성애자인 것이 밝혀지는 것도, 군 입대를 하지 않는 것도, 우리 사회에서는 압제와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성애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적인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은 대안이 부재한 군대라는 현실 앞에 자신을 속여야 합니다. 숨기고 강압적이고 남성적인 현실 앞에 순응과 굴욕 속에서 병든 몸과 마음을 추스린 채 상처를 안고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여성적 감수성을 지향하자


동성애자인 저는 어린 시절부터 ‘남자답지 못하다’, ‘사내자식이 계집애 같다’라는 꾸지람과 조롱을 듣고 자랐습니다. 이러한 저의 정체성은 전투력을 연마해야 하고 남성성을 상찬, 고무시켜야 하는 ‘군대’에서는 ‘개념 없는 자식’, 혹은 ‘고문관’이 되어야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남을 괴롭힌다는 ‘고문관’, ‘문제 사병’이라는 오명이 붙어야 했습니다. “너도 X달고 태어난 남자잖아. 남자로 태어났으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끊임없이 진정한 싸나이로 거듭 태어날 것을 주문하는 군대내 병영문화의 요구는 그 속에서 정체성을 숨긴 채 생활을 해야 했던 제게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과 고공비행의 연속극이었습니다.


저는 이렇도록 성별, 성적 지향에 의한 온갖 종류의 편견과 몰이해와 착종과 반목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천편일률적인 남성상을 재사회화 시키는 가장 강력한 진원이 군대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사회에 주장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계집애 같다고 빈정을 당해야 하고 조소를 당해야 하는 ‘여성적인 감수성’이야 말로 지금의 각박한 세상에서 필요한 미덕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기생오라비, 샌님, 선머슴, 여장부’들을 용납하지 않고 혐오하는 그러한 젠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군인들의 ‘러시안 룰렛’같은 세상은 억지웃음을 지어야 하는 ‘마리오네트’같은 저와 같은 ‘성적 소수자’들에게는 숨 막힐 만큼 갑갑한 세상입니다. 아직까지 성적 소수자도 아닌 이성애자 남자들이 “진짜 남자가 되어서 돌아오겠다.”라는 ’가짜 커밍아웃‘이 없어지지 않는 한 ‘모든 여성적인 것들’에 가치부여를 하고 재평가를 하는 ‘생태 여성주의’적인 신념에 의해 병역거부를 하게 된 저는 말합니다. 대체복무제 도입이나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 궁극적으로는 모병제를 골자로 하는 것은 시작이라고. 우리 모두가 여성적인 감수성을 지향하는 것이 그 끝이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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