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내목소리] 남자가 애 보면 안 되나요?

나는 더 당당해져야 겠다

“둘째 아이는 누가 보나요?”
“출근 늦게 하셔도 되나 봐요.”
“애 엄마는 어디가고….”

솔재와 솔찬이


처음 한 달 동안 내가 받은 질문의 대부분은 이런 것들이었다. 남자가 집에서 애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한 질문들이다. 물론 지금도 가끔 듣는 이야기들이지만 집 주변 알 만한 사람들은 이제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이웃 아주머니, 할머니, 반찬가게 아주머니, 가게 아저씨, 어린이집 선생님….


집 밖을 다닐 때 ‘나 애 보고 있어요!’라고 붙이고 다닐 수도 없기 때문에 누가 물어보기라도 하면 처음에는 ‘어떻게 대답할까?’ 잠깐 고민하곤 했다. 또 아이를 안고 산책이라도 나가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어쨌든 남성이 아이를 돌본다는 게 아직은 흔치 않은 일이니 만큼 주변의 시선이 많을 수밖에. 사실 세 달이 지난 지금도 대낮에 아이 안고 밖에 나가면 주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일상을 잠깐 소개하면 이렇다.



하루종일 우왕좌왕


간밤에 어질러 놓은 장난감이며 동화책이 치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다. 첫째 솔재가 가끔 어린이집 안 가겠다고 고집부리는 날이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오전 8시에는 집에서 나가야 하는 아내는 씻고 화장하고 밥 먹기 바쁘고, 둘째 솔찬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낑낑대며 방바닥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울고 만다. 이 소리를 듣고 솔재도 일어나 동생 달래준다고 안아주는 시늉을 하면 솔찬이는 숨 막힌다고 더 크게 울어버린다. 온통 정신이 없다.


아내가 밥을 먹고 나면 솔재 차례다. 이 녀석 스스로 밥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한 숟갈 한 숟갈 내가 떠먹여 줘야 한다. 치사한 놈. 바쁘면 더 도망 다닌다.


밥을 먹고 시간이 없어 솔재는 씻지도 않는다(사실 씻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요즘엔 아예 물 티슈로 얼굴 닦아주고 자전거에 태워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다. 집에 오니 정각 8시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서야 한숨 돌린다. 마침 솔찬이가 잠이 들면 더 좋다.


이제 집안 청소. 오전에 청소하고 솔찬이 목욕시키면 점심이다. 시간 정말 빨리 간다. 그러고 보니 난 세수도 안했다. 그래도 솔찬이가 목욕 시원하게 하고 행복하게 웃어주면 그만이다. 아파트 옆 중학교에서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나도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널어 논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면 솔찬이는 어김없이 잠에서 깬다. 요즘엔 낮잠시간이 한 시간을 넘지 않는다. 한 시간 자고 나면 한 시간 놀아줘야 한다. 이거 무척 힘든 일이다. 요새 들어 슬슬 기어 다니기 시작하니까 한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침대에서 몇 번 떨어진 뒤에는 더 그렇다.


오후에는 일광욕을 시킨다. 솔찬이를 안고 동네 한바퀴 도는 시간. 처음에는 약간 어색하긴 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솔찬이도 동네 가게 아주머니랑 아주 잘 논다. 분식집 아주머니도 솔찬이를 보면 아주 좋아라 하신다. 아이를 보면 다들 좋아하신다. 왠지 나도 기분 좋아진다.
이제 솔재를 데려와야 할 시간. 오후 5시가 되면 어린이집에서 데려온다. 이때 시간을 잘 맞춰 솔찬이를 재워야 한다. 재우는데 실패하면 유모차에 태워 함께 어린이집에 간다. 처음에는 이게 제일 어색했다. 자격지심. 남들 퇴근시간에 남자가 유모차 끌고 아이 하나 더 데리고 왔다 갔다 하는 걸 내 스스로 의식하게 된다.


저녁시간 아내가 회식이나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아이 둘 데리고 저녁밥 먹이고 놀아주고 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내가 기다려진다. 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빨리 와서 애들 좀 보라고^^;
밤 10시. 이제야 두 녀석 다 잠이 든다. 애들 자고 나면 인터넷도 좀 검색하고 책도 좀 보겠다는 나의 다짐은 잠든 아이들 곁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같이 잠들어 버린다.



“아이는 여자가 봐야!?”


아파트 입구에서 가끔 만나는 할머니 말씀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냥 웃었다. 솔찬이 할머니도 이 말씀을 하신다. 가끔 집에 들려 솔찬이에게 젖병 물리는 모습을 보며 하시는 말씀이다. 이 말에 꼭 덧붙이는 말씀.



“어휴, 나가서 돈이나 잘 벌어야 애 엄마가 집에 있지!”



처음엔 나도 흥분해서 대꾸를 했지만 이제는 하도 들어서 익숙하다. 그냥 웃고 만다. 여자는 집에서 애를 봐야 하고, 남자는 밖에 나가 뼈 빠지게 일해서 돈 벌어 와야 정상적인 모습이라는 일반적 인식은 아직도 팽배하다. 물론 그래야 남편의 권위도 선다는 게 우리네 부모들의 인식이다. 또 ‘정상가족’의 개념은 ‘비정상가족’을 잉태시켜 ‘차별’과 ‘억압’을 재생산한다. 아이들은 이런 사회 안에서 또 많은 것을 배우고 인식한다. 솔재가 보는 그림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넥타이 매고 서류가방을 든 아빠의 모습과 앞치마 두르고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 TV 어린이 프로에 나오는 고정된 성역할. 어린이집에서 가르치는 ‘가족의 소중함’에 가려진 많은 이야기들. 월드컵 이야기만큼 1년 365일 듣고 보는 주변의 모든 상황과 이야기가 아이들의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각인되는 이 ‘무서운’ 교육들….


그래서 더 신경을 쓴다. ‘아빠가 보니 애가 아프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더 신경 쓰고 있다. 더 당당해 져야 했다. ‘아이는 여자가 봐야’ 정상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은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을 권리가 있고, 또 성별을 떠나 모든 이들이 돌볼 수 있다. 다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고정된 성역할’과 ‘남성’이라는 관점의 눈총과 자격지심이 굳어져 있을 뿐이다.



한없이 맑은 아이들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지고 기억될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탄탄한 남성중심의 가부장제도 아래 나의 자식들이 또 어떻게 자라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또 한명의 가해남성을 재생산 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말해주어야 할 지 아직은 내 자신이 우유부단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척이나 학습능력이 뛰어나다. 가르친다고 배우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스스로 해석하고, 스스로 깨닫는 게 더욱 많다. 때문에 부모의 몸가짐 마음가짐이 중요하고, 아이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중요하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그래서 아이가 어른을 가르친다고 흔히들 말한다. 아내가 우연찮게 사주를 봤단다. 내가 셋째 아들이라더라. 정확한 지적이다. 나는 큰 형, 작은 형한테 많은 것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덧붙이는 말

안병주 기자는 지난 4월부터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솔재, 솔찬이의 아빠로 <수원시민신문>에 ‘백수아빠 육아일기’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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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 아이들 ,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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