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와 노동자계급
최경희|회원
중앙정부의 권력 분산: 통치의 효율성
지방자치(自治)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만약, ‘지역 주민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다면, 가능한 얘기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진행되는 것은 ‘지방자치’라기 보다는 ‘지방분권’이다. 즉, 중앙정부가 권력을 분산화하여 통치하기 위한 제도적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부르주아 국가의 중앙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두 축으로 권력을 분립하여 지배하는 정치시스템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사법부가 권력을 보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삼권분립의 형태를 갖고 있다. 이것은 제도적으로 완성된 부르주아 정치시스템이다. 시장이 확대되고 지방이 발달하게 되면서 지방에게도 이러한 제도적 시스템이 확대될 필요가 생기게 된다. 한국에서의 지방자치도 ‘아래로부터의 요구’라기 보다는 ‘위로부터의 필요’에 의해 도입되고 확산되었다. 따라서 ‘지방자치’라기 보다는 중앙정부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한 권력의 분산이란 의미를 갖는다. 만약, 중앙정부에 대해서 상대적인 자율성을 갖고 있는 지방정부라고 한다면, ‘새만금’을 둘러싼 부안 주민의 싸움은 이렇게 무력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지방정부는 철저히 중앙정부에 종속되어 있다. 비대해진 중앙정부의 업무를 지방으로 분권화하는 것은 전체적인 지배시스템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지방선거를 통해 충원되는 단체장, 국회의원을 포함하여 국가요원의 수는 다음과 같다. 광역단체장 16명, 기초자치단체장 232명, 655개 선거구에서 광역의원 각 1명과 비례대표 78명, 1,028개 선거구에서 기초의원 2,513명과 비례대표 375명 등 전국적으로 3,869명을 선출한다. 사실 양으로 따지면, 광역의원과 지방의원의 수가 단체장 수보다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는 시장, 구청장, 도지사와 같은 단체장 즉, 지방정부의 행정을 담당하는 인사를 뽑는 선거가 중심을 이룬다. 즉, 지방정부일수록 의회보단 행정의 권한이 크다는 것을 함의한다. 이것은 앞에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지방자치보다는 지방분권의 의미가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바뀐 선거법에 의해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선거구제도가 바뀌었고, 비례대표제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또한 지방의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제도를 최초로 실시하게 되었다. 지방의원에게 월급을 준다는 것은 이권에 휘말리지 말고, 자율성을 확보하라는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이 그 의도라고 보이지만, 현실은 오히려 부의 집중을 도와줄 것으로 예상된다. 현실적으로 지방의원의 입후보자들은 지방토호세력 또는 전문직 또는 자영업자로서 소득이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지역 내 상층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금 중에 일부를 그들에게 월급으로 주면서, 소득의 재분배효과 아닌 집중의 효과를 낳지 않을까 우려되는 지점이다.
정치신인의 인입: 개혁과 세대교체론의 함의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가 서울시장 출마를 발표함으로써, 약세 열린우리당은 그래도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에 질세라 한나라당도 참신한(?) 후보, 열린우리당 강금실에 대적 또는 우위를 차지할 후보를 찾아 오세훈을 서울시장 후보로 추대하였다. 기존 부르주아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새 피를 수혈 받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항상 선거 때만 되면, 새로운 정치신인들을 계속 인입한다. 그만큼 그들은 항상 대중의 신뢰를 저버리는 정치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 인물로는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의 관심을 끌 수 없다는 반증일 것이다. 항상 외부인사의 영입은 부르주아 정당이 선거에 임하는 첫 번째 수순인 것이다.
아직 열린우리당 내 서울시장 후보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대체로 강금실이 된다는 전망에서, 강금실과 오세훈 후보의 경쟁은 내용을 뛰어넘는 이미지의 싸움이고, “구성된” 이미지 속에서 유권자는 ‘자유로운(?)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강금실과 오세훈은 각각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서 개혁세력과 세대교체론에 입각한 상징적 인물이지만, 노무현 정부시기 열린우리당의 개혁이 반노동자적 반민중적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한나라당은 한국사회 25%의 정치적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핵심적 정당이기 때문에 그 정당의 색채는 뚜렷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주장하는 개혁은 ‘자본주의적 착취’를 위한 ‘합리적 지배 시스템’의 구축과 괴를 같이한다. 사법개혁, 정치개혁 등은 그러한 의미이다. 그들에게 있어 상부구조의 합리화, 개혁은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진행해야 할 임무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노동시장유연화, 자유무역협정, 전략적 유연성 등등에 반대한다거나 또는 다른 뜻을 갖고 정치적 행동을 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부르주아 정치인들에게 있어 신자유주의개혁은 시대의 흐름이고, 대세이다. 그것을 거스르는 부르주아는 부르주아로서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뭔가 다른 것은 원한다는 것 자체가 환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분권 10년의 경험: 개발독재, 공간의 획일화
경기도지사 선거는 열린우리당의 진대제 후보와 한나라당의 김문수 후보가 경쟁한다. 서울시장 선거만큼 세간의 관심은 덜 쏠린다. 경기도 지사 열린우리당 진대제 후보는 일찍부터 선거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최고경영자(CEO)형 도지사"가 그의 선거 전략이다. 일하고 싶은 경기도민 모두를 위해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한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발과 자본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최고경영자가 노동자의 일자리를 고민한다고 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내용이다. 바로 지방에서도 ‘신자유주의 개발’과 ‘신자유주의 화폐정치’가 그대로 투영되는 하나 사례이다. 물론 이명박 서울시장의 시정 또한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청계천 개발을 위해 청계천을 삶의 터전으로 알고 살았던 사람들은 졸지에 개발의 논리 앞에 생의 공간을 잃어버리는 꼴이 되었다.
한국의 농촌과 지방이 낙후되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압축적 경제성장은 지역을 주변화 또는 공동화 시켰다. 그러나 지방분권화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가 주지해야 할 것은 자본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전 지구를 들쑤시고 다니는 것과 궤를 같이하여, 지역 또는 지방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점이다. 지구적 무한경쟁은 지역이라는 공간을 또 다른 한 축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적어도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공간을 자본주의적으로 만드는 데, 지역발전, 지역개발 논리는 그 역할을 충분히 대신하고 있다.
단체장과 지역토지공사, 건설 및 상업자본 등이 결탁한 무분별한 개발정책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양산시키고 있다. 첫째로는 지역주민을 자본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첫째도 돈이요, 둘째도 돈이요 하는 식으로 그들의 영혼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성장’과 ‘개발’논리로 지역주민을 현혹시키지만, 지역주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광범위한 자연적 생산수단들이 개발논리로 수탈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셋째로는 공간의 획일화이다. 이제 자연과 어우러져서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은 획일화된 근대화 개발논리에 덮어진 어색한 공간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어디를 가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내가 어느 서울 주변 변두리에 와 있는지, 지방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 무슨 축제다 무슨 축제다 하면서 진행되는 지방 특산물 축제는 참으로 재미없을 뿐만 아니라 상업적 논리만 팽배해져서 ‘지역적 고유성’은 사라지는 실정이다. ‘공유할 수 있었던 것’, ‘자연스러운 것’, ‘넉넉하고 편안한 것’들은 개발과 성장의 논리 앞에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가속화를 위한 지방선거와 노동자계급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이중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 노동자계급의 운동이 지역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투쟁을 전개하는 데 있어 그 힘이 미약하다. 지방선거를 정치투쟁 및 선전의 장으로 활용하기에는 더더욱 미약하다. 지금 정세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전략적 유연성’을 바탕으로 하는 주한미군이전과 ‘비정규직 입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를 압박, 타격하는 것이 핵심적일 수밖에 없다. 이 전선에서 밀리면, 현 국면의 지방선거에 노동자․농민․민중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를 주장할 만한 근거는 전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독도 영유권’ 문제는 지방선거 시기 동안 예민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를 직접적으로 타격하지 않는 전술은 현실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은 탄핵국면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민중탄핵’을 계속적으로 노동자․민중 세력이 주장했더라면, 지금 이처럼 수세적으로 몰려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노무현 정부가 독점자본의 이해를 철저히 대변하는 친미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가 “좌파적”이라는 우스운 소리는 들으며 소부르주아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정치개혁’ 이미지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가 산산이 깨지는 과정에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판단들을 계속적으로 주장하고 선전․선동했더라면 현 국면에서 이렇게 수세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아무튼 현재로서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대중투쟁을 연대의 큰 틀에서 묶어세우고, 반신자유주의 반노무현 정부 전선으로 5월 투쟁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더 중요한 선동은 발달한 자본주의의 자기 모습이라는 꼴이 이 현실의 지점이고, 자본주의적이기 때문에 이 문제들이 양산되었다고 하는 점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자유무역협정은 국익의 문제가 아니요, 주한미군재배치는 통일의 문제가 아니요, 독도문제는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안들을 관통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정치경제 지배질서의 문제와 모순들을 선동의 핵심으로 제기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