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해결할 생각 없는 한국의 집권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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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인지 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간 최대 현안은 ‘독대’를 하느냐 마느냐였다. 독대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단 둘이 만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은 몰랐다. 의료대란이니 뭐니 하는 와중에 민중의 고통은 뒷전이다. 이런 무책임한 사람들이 있는가?

동아일보는 24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독대를 하면 김건희 여사 문제를 다룰 의향을 용산에 전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용산은 추경호 원내대표까지 함께하는 차담회를 역제안했는데, 이를 한동훈 대표가 거부해 독대는 최종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이 내용에 대해 기자들이 질문했는데 한동훈 대표는 김건희 여사 문제 또한 주요 의제가 될 수 있었다고 답했다. 보도의 핵심을 부정하지 않은 셈이다. 즉 ‘독대’를 둘러싼 용산과 여당의 갈등은 결국 김건희 여사 문제를 여당 대표가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문제 제기하는 상황을 최고 권력이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에 불거지게 된 거라고 볼 수 있다.

한동훈 대표와 김건희 여사는, 한동훈 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정치에 본격적으로 진입을 하자마자 갈등하기 시작했다. 지금와서 복기해보면, 지난 총선 이전 국면부터 보수언론은 한동훈 대표를 통해 김건희 여사의 영향력을 배제하려고 했다. TV조선을 비롯한 일부 종편은 거의 대놓고 이러한 주장을 폈다. 이를 통해 총선에서 그나마 기본은 건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계산이었겠으나, 김건희 여사 배제는 100% 성공하지 못했으며 총선은 대패로 끝났다.

이 휴유증은 이제 ‘공천 개입 의혹’이라는 형태로 본격화되고 있다. 여당 사람들은 애써 모른 척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몸을 던져 방어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법 처리 국면에서 필리버스터를 포기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검찰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밀한 수사 내용, 가령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와 김건희 여사 간 통화기록 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상황은 수사기관도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정권 내 본격적인 흙탕물 싸움이 머지 않았다.

그러한 정국의 돌파구를 반대편에 대한 비판에서 찾으려는 것인지,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 자리에서 뜬금없이 전 정권의 청와대 비서실장을 겨냥한 발언을 내놨다. “평생을 통일 운동에 매진하면서 통일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이야기하던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두 국가론'을 주장하자 갑자기 자신들의 주장을 급선회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전 정권의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았던, 현재는 현실 정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는 인사의 주장을 현직 대통령이 직접 반박하는 건 일반적 정치 감각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나름의 의도가 있는 선택된 발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보수언론은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두 국가론’을 북한의 방침과 엮어 ‘종북’ 코드로 해설하고 있다. 이 대목에선 한동훈 대표도 ‘종북 주사파’ 운운하며 비슷한 인식을 보이고 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견해가 바뀐 이유에 대해선 합리적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비평의 가치가 더 높은 것은 한 개인의 입장 변화가 아니라 이를 다루는 보수정치 전반의 태도이다. 돌이켜보면 전 정권 시절엔 보수정치 일반이 입을 모아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는데, 이때 동원한 논리가 ‘민족주의 감성에 기댄 시대착오적 통일 담론을 버리라’는 거였다. 합리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젊은 세대가 더 이상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진단도 곁들여졌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과 같은 방식의 대북정책을 과연 ‘민족주의 감성’이나 ‘통일이라는 당위’에 기댄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고 경제적으로 지원하면서 장기적으로 비핵화를 달성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영구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오히려 오늘날 현실에서 통일은 보수정치가 과거 ‘통일대박론’ 등을 통해 드러낸 것처럼 북한 체제가 붕괴하는 일이 일어났을 때 파국적 형태로 일어날 확률이 더 높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을 놓고 민족주의나 통일 운운한 것은 본질을 흐리는 것이었다.

오히려 문재인 정권 당시 집권 세력의 태도를 보면 대북정책에 대한 기회주의적 태도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북정책을 통해 그 자체의 어떤 목표를 관철하는 것보다는 선거에서의 성과만을 기대한다거나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매몰비용화될 문제에 대한 책임의 회피를 모색하는 등의 움직임이 부각되는 인상도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초기만 해도 북한과의 군비경쟁을 감수할 수도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는 것도 이러한 의심의 단서다. 2017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한미연합미사일 훈련을 미국에 제안하고 공동으로 실시하도록 하면서 청와대가 직접 이를 ‘무력시위’라 명명했던 게 이를 보여준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허수아비를 때리던 보수정치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남한을 ‘괴뢰’라 호칭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평생을 통일운동에 매진한’ 사람들처럼 굴기 시작한 건 거의 코미디다. 김정은 위원장의 태도 변화에 맞춰 보수언론에 등장하는 자타칭 보수 성향의 대북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통일론을 선점해야 할 때라는 듯한 주장을 쏟아냈다. 기존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구별되는 별개의 통일안을 마련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경축사를 통해 밝힌 ‘독트린’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완전히 선을 긋는 데까지 가진 못했지만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 논의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붕괴론에 기댄 담론이긴 하지만, 어찌됐든 통일에 무관심한 듯한 태도였던 지난 시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냉정하게 생각할 때, 통일은 수단일 뿐이고 목적은 평화군축에 있다. 평화군축을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면 ‘두 국가론’을 취할 수도, 여전히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쪽을 고수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어느 쪽이 좋을지에 대한 이 논의를 책임있게 생산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정치는 그러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북한의 태도와 정권이 처한 현실에 맞춰, 북한이 ‘우리민족끼리’ 하면 “핵 미사일을 겨누는 우리가 왜 같은 민족이냐”하고, ‘적대적 두 국가’를 말하면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에게 민족적 정통성이 있다”면서 서로 ‘상대적으로’ 포지션을 정하고 지지층 결집을 유도하거나 서로 간의 공격에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특히 이 정권 들어 다수의 의제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치는 단지 집권세력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통치논리를 스스로의 시각에 맞게 재구성하고 이를 생산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통치를 책임져야 할 보수가 무능하고 무책임하니 진보정치가 정치 전반을 책임져야 하게 생긴 것이다.

그러나 또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이러한 과정을 스스로 성숙해지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현실의 진보정치는 크게 쪼그라들었으나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말하는 것은 중요하다. 진보정치는 지금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돌아볼 때가 아닐까?

덧붙이는 말

김민하는 정치·사회 평론가, 칼럼니스트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서 일하며 한국의 진보정치가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으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다. 지은 책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냉소 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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