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기후정의, 시작!


출처: 907기후정의행진 인스타그램

2012년, 지리 수업 시간에 교사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말하고자 북극곰 영상을 보여주었다. 기후위기의 파괴성을 강조하기 위해 죽어가는 북극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때도 오래되고 흔한 일이었다. 영상을 다 보고서 청소년이었던 나는 “내가 대신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사는 발끈하더니 “오버하지 마”라고 했다. 그런 말을 할 수는 있겠다고, 문화의 맥락에 따라 이해했지만 교사의 반응이 정말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인간이 기후위기를 일으켰으니 인간에게 책임이 있고, 죗값으로 죽어야 한다면 북극곰이 아닌 책임이 있는 자가 죽는 것이 합리적이게 느껴졌다. 십수 년 동안 나의 ‘오버스러운’ 마음은 적당한 언어를 찾아 헤맸고, 이제야 당시의 내가 감각했던 것은, 비인간의 기후 부정의에 대한 문제 제기였음을 알았다.

1. 위기

‘열대야 벌써 7일째... ’최악 더위‘ 1994년 누적 넘길 듯’, ‘아직 7월인데 긴 열대야 발생... 30년 만에 최다’. 현재 뜨는 기사의 제목들이다. 매해 우리는 기후의 최고 기록을 갱신 중이다. 더위와 추위가 극에 달하는 여름과 겨울에는 이상기후를 견디며 매일 기후위기를 실감하게 된다. 이번 7월 22일은 지구 지표면 평균 기온이 섭씨 17.16도로 역대 가장 더웠던 날로 기록됐다. 2023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만 1년 간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평균 대비 기후변화 마지노선이라고 불렸던 섭씨 1.5도를 훌쩍 넘어 섭씨 1.64도가 이미 더 높았다.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볕을 피할 수 있고, 시원한 곳에 원하는 때에 찾아가 쉴 수 있는 권력을 가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7월 25일, 폭염에 관해 “더욱 더 경제를 파괴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를 훼손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며, “폭염으로 매년 약 50만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말에서조차 배제된 이들이 있다. 바로 동물이다. 동물은 기후위기 발생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과정과 결과에서 모두 극심한 피해를 받고 있기에 기후불평등의 ‘당사자’다.

2. 밀려나는 피해 당사자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양한 동물들은 더위를 받아들이는 방식 또한 다를 것이다. 더위가 신체에 위협이 되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도 하고, 피식/포식 관계에 있는 다른 생물이나 서식지, 질병의 변화로 연쇄적이고 간접적인 영향을 받기도 한다.

출처: 생강

양서류는 호흡, 번식, 이온 교환 및 기타 다양한 생리적 과정을 피부의 수분에 의존하기 때문에 다른 육상 척추 동물보다 환경의 변화에 훨씬 더 민감하다. 성별 결정이 온도에 의존하는 바다거북과 같은 일부 파충류에서는 온도가 재생산 가능 여부를 결정하여 종의 존속이 위협받는다. 조류는 조류 인플루엔자,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의 만연으로 인해 위협받는다. 식물로부터 수분을 섭취하는 코알라 등의 동물은 기온 상승으로 식물 내의 수분 함량이 적어짐에 따라 탈수로 인해 집단 폐사하기도 한다. 산불의 빈도수가 증가하여 초식동물들은 식물 식량 자원을 단기적, 장기적으로 잃는 일이 빈번해진다.

땀샘이 없고 열을 효율적으로 발산하기 어려운 박쥐는 헐떡임, 부채질 등의 행위로 열을 식히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기온이 상승할수록 수면 시간이 줄어 집단 폐사에 취약해지며, 강우량 증가로 인해 식량 자원 탐색에 방해를 받아 아이를 기르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하루에 최대 200L의 물과 90kg의 건초를 먹는 아프리카 코끼리는 큰 몸집으로 인해 열효율이 낮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양의 물 섭취가 필요한데, 가뭄 빈도 증가로 탈수 위협을 받고 있다.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과정 속에서 이미 셀 수 없이 다양한 동물들이 주거권을 침해당하여 살던 곳에서 내쫓기고, 식량이 부족해지고, 불안함 속에서 재생산을 하며 위협을 겪었다. 선주민들은 사람의 서식지 확장과 개발에 의해, 또 그것이 초래한 기후위기로 인해 돌변하는 환경에서 밀려난다. 사라질 지경에 이르면 ‘환경’부는 밀려나던 동물들을 멸종위기종으로 임명한 후 홍보를 하고 사람들은 안타까워한다. 위협을 발생시켰던 종에게 보호 대상이 된다.

3. 감금상태로 기후위기를 겪는다는 것

출처: TV조선 뉴스화면 갈무리

반면, 절대 멸종위기종으로 등록조차 되지 못할 종도 있다. 바로 ‘사육’되는 동물들이다. 

올해 6월 11일부터 8월 5일, 56일 동안 축사 내에서 폐사한 육지 ‘축산 동물’은 30만 3,000명을 넘어섰다. 땀샘이 없는 닭, 오리 등 가금류가 27만 7,000명, 코로 체온을 조절하는 돼지가 2만 6,000명으로 사망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표층 수온의 변화로 물 속 산소량이 부족해져 물살이들도 집단 폐사했다. 8월 초, 전남 고흥의 한 양식장에서는 강도다리 20만 명과 넙치 5만 명이 집단 사망하였다.

돼지가 죽은 이유는 돼지가 피부 중 코로만 체온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바람이 부는 그늘을 찾아가거나 진흙이나 물속에 몸을 담그고 체온을 낮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새들이 죽은 이유는 땀샘이 없어서가 아니다. 41도의 체온을 가진 서로에게서 멀어지지도, 물을 충분히 마시지도, 날개를 열어 바람을 통하게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살이가 죽은 이유는 일정 산소포화도의 물에서만 산소를 얻을 수 있는 아가미로 숨을 쉬기 때문이 아니고, 자신이 살 수 있는 조건의 물로 자유롭게 헤엄쳐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하고자 하는 행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수 없도록 ‘감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축사에서는 외부 온도와 반대로 온도 조절을 하기 위해 여름에는 냉방기와 환풍기, 겨울에는 난방기를 오래 켜 두어야 한다. 과도한 전력 사용으로 인한 축사 화재 사고도 잇따른다. 축사 화재 사고에서도 결박되어 대피할 수 없는 동물들은 그저 그 자리에서 소사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4. 그것이 번역되는 방식

폭염으로 인한 이들의 죽음은 애도되지 않는다. 이 죽음은 그들이 산업 속의 물건, 소유물, 자본인 사회로 오면서 ‘손해’로 번역된다.

암소가 열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우유 생산량과 수태율이 감소하고, 낙농산업의 생산비를 증가시키며 수입은 감소한다.(중략) 기온이 25°C에서 1°C만큼 상승할 때 20, 35, 50마리 농가의 경우 각각 7, 13, 18만 원의 소득이 감소한다. (공현석, <기후변화가 축산업에 미치는 경제효과>, 2020)

농식품부 관계자는 "폐사한 닭과 돼지는 각각 전체 사육 마릿수의 0.1%, 0.2% 수준"이라며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현재 미미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폭염에 가축 26만 마리 폐사·채솟값도 '들썩'…"수급안정 총력"’, 2024.08.05)

축사의 냉난방 전력 사용 증가로 인한 화재사도 애도되지 않는다. 급이기, 비닐하우스 등과 함께 ‘재산피해’로 번역된다.

불은 돈사 2개동 550㎡와 돼지 420두를 소사시켜 소방서 추산 3억 6000만 원의 재산피해를 낸 뒤 1시간 20여 분만에 꺼졌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뉴스1, ‘충북서 밤새 돈사·주택화재 잇따라…재산피해 4억대’, 2024.08.03.)

양계장 비닐하우스 5개동이 전소되고 닭 2만 마리가 폐사되는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뉴스핌, ‘용인 양계장서 큰 불...5개동 전소·닭 2만 마리 폐사’, 2024.08.05)

출처: 오혜리

5. 기후가 아닌 세상을 바꾸자고

‘사육’되는 동물들은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작년 기후정의행진에 갔다가 소 그림과 함께 ‘왜 맨날 나만 갖고 그래?’라고 써 있는 피켓을 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소의 방귀 때문에 지구가 뜨거워진다’는 것은 유명한 말이 되었다. 그러나 소의 방귀가 기후문제의 원인으로 언급되는 것은 소 15억 명 이상이 뒷일에 대한 책임 없이 효율과 경제성만을 중심으로 길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억울한 소의 방귀를 질타할 것이 아니라 ‘축산업’이라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축산업은 동물과 조사료를 기르기 위해 숲을 잘라내고, 온실가스를 전체 교통수단보다 더 많이 배출하고, 흐르는 물을 오염시키고, 악취를 유발하고, 사체를 대량으로 묻어 땅을 썩힌다. 축산업은 인간이 인간 외 동물을 지배/수탈할 수 있다는 종차별주의와 인간 중심주의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강력한 기반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탄소 축산’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대체다. 

축산업이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줄이기 위한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는 국가들도 있다. 네덜란드는 축사와 사육되는 동물의 수를 감축하기 위해 축산업자의 업종 전환금을 지원한다. 더불어 축산업 허가를 내주지 않으며, 그럼에도 축산업이 축소되지 않을 경우 정부가 축사를 사들이는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한겨레21, ‘소시지의 나라’에는 축산업이 없다?, 2022.08.05. 참고) 네덜란드가 취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축산업이 동물과 노동자에게 모두 착취적이며,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공동의 인식이 형성되어 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국내에서도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비인간동물의 기후정의와 관련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9월 7일, 곧 있을 기후정의행진에 처음으로 비인간동물에 대한 요구가 포함되었다. ‘비인간 동물을 상품화하는 공장식 축산을 정의롭게 전환하고, 동물 착취 시스템을 철폐하라’. 동물이 기후위기의 과정과 결과에서 모두 피해당사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타 종과의 공존보다 기업의 개발을 선택하는 체제에 저항하며, 피해에 대해서 돌봄으로 책임을 지자. 기후위기 속 비인간동물이 9월 7일 하루라도 가시화될 수 있도록, ‘동물로 함께 걷기’를 통하여 참석하지 못할 수많은 분들을 대리하여 행진하길 부탁드린다.

출처: 기후위기에 저항하는 동물들의 행진
덧붙이는 말

세원은 동물이 겪는 폭력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동물권 활동을 시작했다. 얇든 굵든 길게 활동하기 위해 살처분폐지연대 등에서 동료들과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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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비인간존재들이 재산이 아닌 생명의 가치로 회자되고, 갇히거나 고통스럽지 않고 그들답게 살다갈 그날이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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