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자, 내일의 양: 미중 패권 경쟁

[서평] 오드 아르네 베스타드의 ⟪다가오는 폭풍⟫

최근 출간된 오드 아르네 베스타드(Odd Arne Westad)의 ⟪다가오는 폭풍: 권력, 갈등, 그리고 역사의 경고⟫(The Coming Storm: Power, Conflict, and Warnings from History)는 베스타드가 예일대학교에서 진행한 대전략 세미나의 결과물이다. (아르네는 한 학술대회에서 내게 이 책을 아주 친절하게 선물했다.) 이 책의 주된 목적은 다극 세계, 즉 초강대국이 둘보다 많은 세계에서 강대국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살펴보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교훈을 얻는 데 있다.

220쪽에 불과한 비교적 짧은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오늘날의 다극 세계를 설명하고, 미국이 군사적·정치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이념적으로 유일한 초강대국이었던, 지금은 단극 체제의 한 시기로 여겨지는 시대가 어떻게 막을 내리고 현재의 세계가 그 뒤를 이었는지 살펴본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이미 수없이 논의해 온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오늘날의 상황과 연결해 다시 짚어본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앞으로 수개월 또는 수년 사이에 적어도 두 강대국의 충돌을 일으키고 세계를 전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잠재적 분쟁 지역을 살펴본다. (마지막 10여 쪽은 강대국 간 전쟁이 없는 세계를 호소하는 매우 강력한 변론이다. 우리는 전쟁에 뛰어들기 전에 전쟁이 문제를 깔끔하고 명쾌하게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착각할 때가 있지만, 베스타드는 실제로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강대국 간 전쟁은 거의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해야 한다. 나는 이 마지막 10여 쪽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모든 이사국에 나눠주기를 바란다. 그저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의미에서라도 말이다.)

베스타드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갈등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동아시아라고 본다.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이 이 갈등은 세계에서 유럽이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던 시절 영국과 독일이 벌였던 갈등과 닮았다. 독일과 영국이 그랬듯 중국과 미국도 왜 패권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였는지를 둘러싼 논의는 이미 무수히 이루어졌으므로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다만 베스타드에 따르면 중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적대적인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 포위이며,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힘을 지나치게 넓은 지역에 분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베스타드는 중국이 사방에서 포위당하고 있다고 본다. 북쪽에는 일본과 한국이 있고, 그 아래에는 필리핀이 있다. 무엇보다 남쪽과 동남쪽에는 인도네시아가 있다. 인도네시아는 인구가 거의 3억 명에 이르며 중국과 불편한 과거를 공유하는 나라다. 또 약 50년 전 중국이 마지막으로 전쟁을 치른 상대인 베트남이 있고, 베스타드가 중국의 타협할 수 없는 적으로 보는 인도도 있다. 중국과 인도는 히말라야에서 국경 분쟁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가장 유력한 분쟁의 도화선인 대만이 빠져 있다. 대만 자체가 중국에 군사적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쟁을 촉발하는 원인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1차 세계대전과의 비유를 이어가면, 오늘날 러시아는 당시의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해당한다. 쇠퇴기에 접어든 다민족 강대국으로, 영향력과 국력이 약해지고 있지만 전쟁을 통해 자신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강대국임을 스스로 확인하고 다른 나라에도 각인시키려 한다.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독일에 의존했듯 오늘날 러시아는 중국에 의존한다. 당시 독일과 오늘날 중국 모두 어느 정도 마지못해 동맹을 맺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더구나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시아는 각각 불과 수십 년 전 자신들이 의지하게 된 강대국과 짧은 전쟁까지 치렀다. 오스트리아는 1866년 독일과 싸웠고, 중국과 러시아는 1969년 무력 충돌을 벌였다. 그러나 강대국 정치의 논리는 당시 독일에는 오스트리아를, 오늘날 중국에는 러시아를 지원하는 것 외에 별다른 선택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한 중국 정치학자가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푸틴이 중국의 외교정책을 납치했다.”

이 대목에서는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가 오늘날의 세르비아에 해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비유는 꽤 잘 들어맞는다. 이런 구도로 보면 오늘날의 유럽은 1914년의 프랑스에 해당한다. 그러나 베스타드는 이런 식으로 논의를 전개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이유는 중국과 미국이 경쟁하는 핵심 무대가 유럽이 아니라 동아시아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과 독일이 경쟁했던 핵심 무대는 해상이었으며, 따라서 발칸반도에서 우연히 충돌이 폭발했을 뿐이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베스타드는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베스타드의 비유에서 오늘날의 프랑스에 해당하는 나라는 인도다. 베스타드는 인도의 미래를 매우 밝게 전망한다. “인도는 다른 어떤 강대국보다도 앞으로 도약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듯하다”(87). 인도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성장률도 비교적 높다. 신기술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강국이며,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민주주의 체제를 갖추고 있다. 또한 권력 승계 문제가 불거질 때 중국의 정치체제가 보여줄 수 있는 취약성에 비하면 인도의 정치체제는 훨씬 견고하다. 인도에는 모디라는 민족주의 지도자도 있다. 그는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 일본의 메이지, 프랑스의 루이 나폴레옹처럼 민족주의를 고취하고(정확히 말하면 힌두교를 앞세우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끌어 낸다.

인도를 새로운 프랑스로 본다면 대립 구도는 미국과 인도 대 중국과 러시아가 되고, 전쟁을 촉발할 핵심 지역은 동아시아가 된다. 물론 베스타드의 접근법이 이처럼 기계적인 것은 아니다. 그는 비유를 무리할 정도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다만 몇 가지 요인을 근거로 오늘날 강대국 간 충돌이 일어날 위험이 가장 큰 지역을 동아시아로 꼽는다. 동아시아는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이며,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핵심 강대국인 중국이 자리 잡고 있다. 새롭게 부상하는 강대국 인도도 이 지역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미국 역시 정치적으로 깊이 관여하고 있지만 동시에 역량을 지나치게 넓게 펼쳐 놓았을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이런 전제에 동의한다면 대규모 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 어디인지 살펴봐야 한다. 이 경쟁에서는 대만이 단연 첫손에 꼽힌다. 베스타드는 이 문제에서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정책을 지지한다. 한편으로 미국이 대만 방어를 전적으로 보장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대만이 무모하게 독자 행동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하이 공동성명(Shanghai Communiqué)을 충분히 모호하게 해석해 중국에 마음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백지위임장을 줘서도 안 된다.

베스타드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영국도 같은 정책을 취했다. 영국은 러시아와 공식적인 군사동맹을 맺지 않았으며, 프랑스와의 동맹도 충분히 모호하게 유지해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참전 여부를 결정할 여지를 남겨뒀다. (영국이 확실하게 약속한 것은 벨기에의 중립을 보장한다는 것뿐이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베스타드는 독일에 프랑스와 러시아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영국의 정책을 비판한다.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공격한 뒤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었던 유일한 요인은 영국이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지원하겠다고 명확하고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것이었을 것이다”(156).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1914년 여름처럼 사건이 숨 돌릴 틈 없이 연이어 벌어질 때, 그리고 미래의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는 그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질 텐데, 강대국이 기존 정책을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은 극도로 짧다. 베스타드의 주장대로라면 영국은 독일에 전략적 모호성이 끝났다는 신호를 보내 전쟁 발발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시간은 길어야 48시간에 불과했다. 대만을 둘러싸고 전쟁이 벌어진다면 미국에 주어지는 시간은 길어야 한 시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베스타드가 여러 장점이 있다고 평가하는 전략적 모호성정책이 결국 오히려 스스로의 목적을 무너뜨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긴다. 전쟁을 막기는커녕 사건이 정책보다 빠르게 전개되면서 전략적 모호성 자체가 아무 의미도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26년에 출간됐지만 원고는 아마 2025년 상반기에 완성했을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현재 상황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베스타드는 이란을 잠깐 언급하는데,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두 번째로 공격하기 전 사람들이 흔히 바라보던 방식대로 이란을 역내의 골칫거리 정도로 다룬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별 고민 없이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이란이 그토록 강력하게 대응해 전략적 주도권을 방어하는 쪽이 쥐게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더 적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거의 모든 군사 교리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공격하는 쪽이 아니라 방어하는 쪽이 주도권을 쥔 것이다. 어쩌면 제1차 세계대전과의 비유가 들어맞지 않는 또 하나의 사례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가 얼마나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앞으로 강대국 간 전쟁이 다시 벌어진다면 미국이 참여한 가운데 유라시아 대륙과 그 주변 섬들이 전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는 원자재 공급원이 될 가능성을 제외하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유일하게나마 예외라고 할 만한 나라는 브라질이다. 베스타드는 브라질이 남아메리카의 패권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으며, 최근 특히 브릭스(BRICS)에서 이전보다 뚜렷하고 적극적인 국제적 역할을 맡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 하나 빠진 부분이 있다. 다만 책의 마지막 장에서 어느 정도 보완하기는 한다. 바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다. 베스타드는 이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책 말미(207~208)에 이르러서야 나토 확대가 러시아 엘리트층의 두려움을 키웠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런 무모한 확대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지 그 종착점을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토의 경계가 어디에서 끝나는지 과거에도 누구도 말할 수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토는 이제 북대서양이라는 지리적 범위와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다. 불가리아, 북마케도니아, 루마니아가 어떻게 북대서양이라는 지리적 범주에 들어가는지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토의 확대에 끝이 없다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까지 확대하려 했던 것처럼 앞으로 카자흐스탄과 몽골까지 확대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중국이 서쪽에서는 나토에, 남쪽과 동쪽에서는 쿼드(QUAD)에 완전히 포위되는 상황을 원하겠는가? 강대국 간 평화를 유지하려면 나토가 과거든 지금이든 확대의 종착점을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이 문제에서도 전략적 모호성이 과연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환영하는 시인들

이 책은 금세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책이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오늘날의 상황을 제1차 세계대전과 직접 비교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다극 세계에서 비교적 사소한 국제적 사건과 오해, 지도자 개인의 변덕스러운 충동, 베스타드가 자주 표현하는 오만과 두려움(hubris and fear)’, 엘리트층의 불만, 그리고 언론이 부추기는 대중의 분노가 어떻게 엄청난 오판을 낳고, 그 오판이 다시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대량살상무기의 시대에는 그런 전쟁이 문명 자체를 끝장낼 수도 있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됐을 때 양쪽 진영의 지도자들과 거의 모든 정당, 노동자, 평범한 시민들까지 열광적으로 전쟁을 환영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출처Lions of today, sheep of tomorrow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